일상 23

술지게미의 추억

할머니께서 아침부터 가마솥에 불린 쌀을 쪄 고두밥을 지어 나무채반에 펼쳐 두었다. 그 고두밥을 은영과 남동생 진영이 할머니 몰래 집어먹었다. 등 뒤에서 할머니의 고함에 놀라 두 남매는 대문 밖으로 도망쳤다. 할머니께서 식힌 고두밥과 며칠 전 만들어 놓은 누룩을 손으로 잘 비벼 섞어 술독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솔잎을 씻어 얹었다. 이불로 술독을 덮은 다음 아랫목에 잘 모셔두었다가 쌀알이 떠오르고 보글보글 거품이 생기기 시작하면 며칠 후 시큼한 막걸리 향이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막걸리를 할머니께서 마루에 앉아 고운체에 걸러 막걸리 항아리에 담았다. 외정 시절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도 몰래 술을 담가 할아버지께 한 잔씩 약주로 드렸다고 했다. 한번은 막내 고모가 관에서 조사가 나왔다며 술독을 숨기라..

일상 2023.10.19

나쁜며느리_추석에 호텔에서 혼자놀기2

지난 8월 말 템플스테이 예약을 포기하고 호텔 예약을 했었다. 그 사이 10월 2일이 또 연휴에 포함되었지만 출근이 애매해 호텔 일정에는 넣지 않았다. 내가 호텔을 예약하고 제일걱정은 아이들의 밥과 겨울이(고양이) 밥이었다. 어쩌다 밥걱정으로 내 일정이 뒤로 미뤄진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날짜는 다가왔고 결국 공식적으로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비공식적으로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그렇게 하려고 새벽까지 집안일을 했고 밥도하고 반찬도 해놓고 빨래도 했다. 이것저것 남자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고양이 케어에 대한 것들을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리고 시댁에도 전화를 했다. 뭐 뒤통수 맞은 것 같겠지만 명절이라고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차례를 지내지도 않으니 그냥 짜증이 나고 ..

일상 2023.09.29

생일인데 병원입니다.

나와 22살 차이가 나는 여자 사람 할머니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은 세월 따라 백발이 되었고 매일 숙제처럼 한 움큼씩 약도 드십니다. 집청소도 매일 한다는데 바닥엔 흙도 있고 청소한 흔적을 찾기가 더 그렇습니다. 냉장고엔 음식들이 꽉 차 뭐가 어디 들었는지 알 수도 없고 유통기한이 언제인지도 모를 고기며, 생선이며 해마다 들여다봐도 똑같은 자리에 있기도 하고 김치냉장고엔 썪고 얼어서 못 먹는 음식들로 들어차 있어 집안에 들어서면 냉장고부터 열어 봅니다. 할아버지와 싸우며 아들집을 오가다가 작년에 남편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독거노인으로 살아간 지 9개월입니다. 젊었을 때는 농사일도 하고 객지로 나가 돈을 벌어 자식들 공부도 시켰다는데 그 자식들이 누구 하나 번듯하게 자라 부모 고생..

일상 2023.09.08

이렇게 쉽게 브런치 작가?

나름 3 수생 오기로 2번 신청했다가 떨어지고 글쓰기 카페에 가입해 1~4기까지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해 200개가 넘는 글을 쓰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다. 어제저녁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몇십 분 되지 않아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나는 자비로 작가가 될 것이니 아쉬울 것도 없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아침에 메일을 확인하니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고 일을 하다 2학기 부산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강좌를 수강신청하고 퇴근준비를 하면서 메일을 확인했다. 메일은 왔고 클릭하기 살짝 겁도 났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쉽게 브런치 작가라고? 뭔가 아쉬움마저 느껴졌다. 힘을 빼고 포기하니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일까? 수필수업 수강한 게 너무나..

일상 2023.09.01

무소유적 삶_어쩌면 다 가진 사람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은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정스님- 며칠 전 자주 방문하는 이웃블로그님이 나더러 '다 가졌다'며 내 글에 답글을 남겨 놓았는데 그 짧은 답글이 많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개인적 친분이 없고 오로지 글로만 만나는 분이라 이분은 진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모자라는 사람이고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는 사람이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 내 몸과 마음을 던져도 항상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좋게 말하면 성취욕이 강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른 자!', '미친 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어쩌면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 낼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이 이상한 세상에서 한발..

일상 2023.09.01

10kg 감량하게 한 남편의 한마디! (2)

신체적으로 좋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지만 둘째로 태어나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눈칫밥 먹으며 버텨오면서 얻은 게 있다. 바로 끈기이다. 될 때까지 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과를 얻고 그 힘든 시간은 과정으로 아름답게 포장이 된다는 것이다. 만약 포기를 하면 실패지만 끝까지 가면 누가 봐도 아름다운 결과를 얻는다. 나는 그렇게 끈기하나로 50년을 버텨왔다.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쉽지 않았다. 병원종사자라 코로나 예방접종도 제일 먼저 했었다. 코로나 4차 예방접종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수액을 맞고 퇴근을 했는데 진통제와 수액 덕분인지 운동을 해도 되겠다는 근자감에 사로잡혀 40분 넘는 홈트를 하고 집안일까지 무사히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날 내가 느낀 공포심은 "..

일상 2023.08.30

10kg 감량하게 한 남편의 한마디!

내가 1년 5개월 15일 동안 다이어트와 유지어터 기간을 지나면서 든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작성한 글 입니다. 지금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있거나, 다이어트를 막 시작했지만 정체기가 왔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통뼈에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또 싫어하지도 않았고 식빵에 마요네즈 얹어 먹는 정도? 2022년 석사논문을 쓰고 난 직후 해방감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먹기 위해 먹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논문살이라는 것이 있다고. 초콜릿 종류는 잘 먹지 않는데 초코바도 먹고 음식이건 과자건 가리지 않고 몇 달을 먹었다. 나에 대한 보상이라는 달콤함에 그냥 나를 음식 속으로 밀어 넣었다. 직장을 다니고 살림을 하는 여자사람아 줌마라 나올..

일상 2023.08.29

나쁜며느리_추석에 호텔에서 혼자놀기

아침에 호텔을 예약했다. 이번 추석연휴는 나혼자 호텔에서 지내며 혼자놀기가 목표이다. 오늘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번 추석에는 공식적으로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할 예정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2021년 추석에 나는 자궁적출수술을 했었다. 시댁에는 출근한다고 둘러댓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별일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의 1년 동안 수술을 피하기 위해 병원진료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수술만 늦춘 것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수술을 한다고 하면 시어머니가 놀라서 안 되니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는 나쁜 며느리가 되라고 했다. 수술 후 나는 겨우 정신이 들었지만 시댁에 코로나 때문에 비상근무라 출근해서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장기 하나가 없어졌고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일상 2023.08.25

삶에 대한 고찰

이 글은 내가 직장에서 겪는 죽음에 대한, 삶에 대한 고찰이다. 혹시 삶을 포기하고 싶거나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한 사람이라면 이 글을 통해 과연 사람으로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지만 죽음은 늘 익숙하지 않다. 나도 늘 삶에 찌들어 산다. 그래서 정말 잊으면 안 될 것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는다. 태어날 시간은 정할 수 있지만 죽는 시간은 정할 수 없다. 오늘도 한 명의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다. 나보다 한살이 많은 남자사람이다. 불과 2개월 전 암진단을 받았고 말기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부작용이 심하고 전이가 되어 포기했다. 미혼이라 어머니께서 보호자로 오셨고 더 힘들어하셨다. 아침에 잠시..

일상 2023.08.24

결혼은 잘못이 없다_독서 후기

지난주 금요일 퇴근 후 책을 받았지만 책 포장을 뜯지도 못하고 일정이 있어 모셔 두었다가 일요일 저녁에 책을 펼쳤다. ​ 만약 내가 이 책을 결혼 전에 읽었더라면 내 인생의 굴곡이 조금은 옅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결혼 후 나이를 먹고 억지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보다는 이제 막 연애를 하고 결혼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필요한 책인 듯 느꼈다. ​ ​ ​ 책을 읽는데 기어이 책상에 누워 자는 우리 집 주인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책 제목에서 받는 편견이 있어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결혼해서 아줌마로 살아온 세월이 20년이 넘었고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기에 결혼과 관련된 일이라면 일단은 스트레스를 받고 본다. ​ ​ 29살에 30살 동..

일상 2023.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