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쁜며느리_추석에 호텔에서 혼자놀기2

쓴다손 2023. 9. 29. 16:03
728x90
반응형

  지난 8월 말 템플스테이 예약을 포기하고 호텔 예약을 했었다. 그 사이 10월 2일이 또 연휴에 포함되었지만 출근이 애매해 호텔 일정에는 넣지 않았다. 내가 호텔을 예약하고 제일걱정은 아이들의 밥과 겨울이(고양이) 밥이었다. 어쩌다 밥걱정으로 내 일정이 뒤로 미뤄진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날짜는 다가왔고 결국 공식적으로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비공식적으로는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그렇게 하려고 새벽까지 집안일을 했고 밥도하고 반찬도 해놓고 빨래도 했다. 이것저것 남자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고양이 케어에 대한 것들을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리고 시댁에도 전화를 했다. 뭐 뒤통수 맞은 것 같겠지만 명절이라고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차례를 지내지도 않으니 그냥 짜증이 나고 화가 조금 나겠지만 나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정도의 갑옷은 몇년 전부터 매일 한 겹 씩 입고 있어서 괜찮았다.
 
그렇게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가족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는 도망쳤다. 호텔에서 제공해 주는 물을 먹기 싫어서 물도 챙기고 동생이 사준 시집 두권과 공부할 책, 옷가지와 노트북, 요가 매트까지 큰 캐리어에 짐을 쌌다. 사실 요가매트만 아니면 캐리어도 필요 없는데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려서 요가 매트를 가로, 세로로 접어서 쑤셔 넣었다.
 
그렇게 가방을 싸고 멀리있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는데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이라 케리어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근력운동한 게 이럴 땐 요긴하게 쓰인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아서 나도 깜짝 놀랐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다. 방은 작지만 또 작은 대로 창문이 커서 다리와 바다가 보이는 뷰가 마음에 들었다. 침대도 싱글인 줄 알았는데 퀸사이즈라 혼자서는 뒹굴거려도 좋다.
 

 

저녁에 맥주도 한캔먹고 운동도 1시간 하고 반신욕도 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지내는 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청소서비스도 마다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호텔조식도 제공이라 간단히 먹고 올라와 커피도 한잔 먹고 TV를 틀어놓고 점심때까지 잤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 또 이런 날이 올까 싶어 양껏 즐기기로 했다. 
 

 
 

 
나중에 병원이 아닌 호텔에서 지낸걸 알게 되어 욕이란 욕을 다 먹어도 지금의 상태라면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혼자만의 휴식을 가져본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오늘을 포함한 이번 추석은 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또 이런 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을 즐기련다. 5성급 호텔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지금 여기가 파라다이스다.
 
완전 범죄를 꿈꾸지만 뭐 욕은 나중에 먹는걸로. 
 
 

728x90
반응형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지게미의 추억  (1) 2023.10.19
생일인데 병원입니다.  (0) 2023.09.08
이렇게 쉽게 브런치 작가?  (0) 2023.09.01
무소유적 삶_어쩌면 다 가진 사람  (0) 2023.09.01
10kg 감량하게 한 남편의 한마디! (2)  (2) 2023.08.30